세계보건기구(WHO)가 마침내 비만을 의지나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닌, 적극적인 약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공식 인정하는 역사적인 지침을 발표했다. WHO는 1일, 미국의사협회지(JAMA)를 통해 성인 비만 치료제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의 약물을 공식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식단 조절과 운동 등 행동 치료에 초점을 맞춰왔던 WHO가 약물 치료의 필요성과 효능을 전면적으로 인정한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다.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앓고 있는 비만과의 전쟁에서 새로운 국면이 열린 것으로, 특히 '위고비', '마운자로'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특정 약물들이 공식적인 치료 옵션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전 세계 보건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이번에 WHO가 공식 권고한 GLP-1 계열 약물은 본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되었으나, 체중 감량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면서 비만 치료의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의약품이다. 이 약물들은 장에서 분비되는 GLP-1 호르몬과 유사하게 작용하여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안정시키고, 뇌에 직접 작용해 강력한 포만감을 유발함으로써 식욕을 억제하는 원리다. WHO는 구체적으로 세마글루타이드(제품명 위고비), 티르제파타이드(마운자로), 리라글루타이드(삭센다) 세 가지 성분을 지목하며, 이들이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을 넘어 심장 및 신장 합병증과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조기 사망 위험까지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 효능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지난 9월 이들 약물을 필수의약품 목록에 추가한 데 이은 후속 조치로, 비만 치료에 대한 WHO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새롭게 발표된 지침은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인 성인을 대상으로 하며, 두 가지 핵심 권고 사항을 담고 있다. 첫째, 임신부를 제외한 성인의 비만 치료를 위해 GLP-1 계열 약물을 6개월 이상 장기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만을 일시적인 체중 조절이 아닌,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WHO는 장기 사용에 따른 안전성과 부작용, 높은 약값으로 인한 의료 불평등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을 명시하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둘째, 약물 치료와 함께 건강한 식단과 신체 활동을 포함하는 집중적인 행동 치료를 병행할 것을 권고했으나, 이러한 병행 요법이 치료 효과를 추가로 높인다는 의학적 근거는 아직 낮다고 덧붙여 약물의 효과 자체에 더 무게를 실었다.
WHO의 이번 결정은 전 세계적인 보건 정책의 거대한 전환점이자, 비만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WHO가 비만을 질병으로 공식 인정하고 구체적인 약물 치료 지침까지 제시함에 따라, 각국 정부의 보건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성인 비만율이 40%에 육박하고 관련 사회경제적 비용이 수조 원에 달하는 한국의 경우, 이번 지침이 비만 치료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에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테드로스 WHO 사무총장이 "약물만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GLP-1 치료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비만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힌 것처럼, 비만과의 길고 긴 싸움에서 인류가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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