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말하며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앞서 자신이 김정은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보도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피했지만, 북한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중재로 30여 년간의 분쟁을 끝내기로 한 민주콩고와 르완다 외무 장관의 평화 협정 체결 자리에서 이러한 언급을 해 더욱 주목받았다. 외교가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휴전을 중재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제 북한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은 평화 중재자이자 통합자로서의 업적일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지난달에는 "나는 노벨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언급하며 자신의 외교적 성과와 평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부각해왔다. 이는 북한 문제 해결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반응은 싸늘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29일 노동당 80년사와 관련된 기사에서 "적대 세력들은 지난 10여 년간 사상 초유의 극악한 제재 봉쇄 책동에 매달렸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또한 유럽·중동 정세 관련 기사에서도 "세계가 불안정과 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미국과 서방 나라들의 날강도적인 주권 침해 행위" 때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러한 북한의 강경한 태도는 최근 러시아와의 군사·경제적 밀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올가 류비모바 러시아 문화부 장관이 지난 28일 평양에 도착하는 등 북러 간 고위급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북한이 국제 사회의 제재와 고립 속에서 러시아를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 군사력 강화와 경제난 해소를 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해 군사·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어 당장 미국과 협상을 하려 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득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얻을 수 있는 불확실한 이득보다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매체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북한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 여지를 남겨두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여러 차례 성사되었던 경험을 고려할 때, 북한은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향후 대화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미·북 관계는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채 장기화되고 있으며,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며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화 제의와 북한의 복합적인 반응은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국제적 고립을 타개하고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북한의 전략은 동북아 안보 지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사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향후 행보와 북한의 대미 정책 변화, 그리고 러시아-북한 관계의 진전을 예의주시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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